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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철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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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릉 이야기 - 대문

  왕릉 안내

  동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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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삼릉

조선조 왕릉 소개

1대 태조: 건원릉,제릉 외

2대 정종: 후릉

3대 태종: 헌릉

4대 세종: 영릉

5대 문종: 현릉

6대 단종: 장릉, 사릉

7대 세조: 광릉

추존 덕종: 경릉

8대 예종: 창릉, 공릉

9대 성종: 선릉, 순릉

10대 연산군: 연산군묘

11대 중종: 정릉,온릉 외

12대 인종: 효릉

13대 명종: 강릉

14대 선조: 목릉

15대 광해군: 광해군묘

추존 원종: 장릉

16대 인조: 장릉, 휘릉

17대 효종: 영릉

18대 현종: 숭릉

19대 숙종: 명릉, 익릉

20대 경종: 의릉, 혜릉

21대 영조: 원릉, 홍릉

추존 진종: 영릉

추존 장조: 융릉

22대 정조: 건릉

23대 순조: 인릉

추존 익종(문조): 수릉

24대 헌종: 경릉

25대 철종: 예릉

26대 고종: 홍릉

27대 순종: 유릉


 조선 왕실세계표

 

 

 

 

  제26대 순종(純宗)과 황후(皇后)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 계후(繼后) 순정효황후
   (純貞孝皇后) - 유릉(裕陵)

 

 

유릉

소재지 :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141-1< 洪裕陵 소재 >
사 적 : 제 207 호

裕陵의 특징
  조선 제27대 국왕이자 마지막 임금이며 황제인 純宗(이척 : 1874-1926, 재위 4년)과 황후(皇后) 순명효황후 민씨(純明孝皇后閔氏 : 1872-1904)와 계후(繼后) 순정효황후 윤씨(純貞孝皇后尹氏 : 1894-1966)를 모두 함께 합장(合葬)한 유릉(裕陵)은 역시 고종의 홍릉과 함께 황제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유릉의 조성 시기는 처음 순명황후가 순종 즉위 전인 1904년에 황태자빈으로 승하해 서울 뚝섬 근처에 유릉으로 장사를 지냈는데, 순종이 승하한 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합장을 했고 그 뒤 계후인 순정황후가 1966년에 승하하고 유릉에 함께 합장을 해서 지금까지 오고 있습니다.
  능의 제도는 홍릉과 마찬가지로 종래의 정자각(丁字閣) 대신 정면 5칸, 측면 4칸의 침전(寢殿)을 세웠고 그 앞에 양쪽으로 문무석(文武石)을 세우고, 홍살문까지 기린, 코끼리, 해태, 사자, 낙타, 말 두 마리의 순으로 석수(石獸)를 세워놓았습니다. 역시 문인석은 금관을 쓰고 있는데, 석물들이 보다 사실적인 모습을 하고 있고 봉분에도 홍릉과 같이 병풍석과 난간석을 두르고 있습니다.

순종대의 사료

연도

재위

사  료(史料)

 

연도

재위

사  료(史料)

1907

융희
1년

1월, 국채보상운동 시작

1909

융희
3년

7월, 사법권 일본에 넘어감[기유각서(己酉覺書)]

6월, 헤이그 밀사사건 일어남

7월, 황태자 황제양위식 거행

10월,안중근 하얼빈에서 이또{이등박문} 죽임

8월, 군대 해산됨, 연호를 융희로 고침, 영친왕 은 황태자 책봉

1910

융희
4년

6월, 경찰권 일본에 이양

1908

융희
2년

12월, 일본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 설립

8월 한일합방조약 조인[경술국치]

뒷 이야기
황제복의 순종  고종(高宗)과 명성황후(明成皇后)의 슬하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난 순종(純宗)은 1875년[고종 12년]에 세자(世子)가 되었으며 1897년에 대한제국(大韓帝國)의 황태자(皇太子)로 책봉됩니다. 1907년에 일본의 압력과 이완용(李完用) 등의 강요로 헤이그 밀사사건의 책임을 지고 고종이 양위(讓位)하자 황제(皇帝)로 즉위해 연호(年號)를 융희(隆熙)로 삼습니다.
  하지만 외교권을 박탈당해 독립국의 실권을 잃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망국의 길을 걷고 있었던 대한제국은 순종 즉위년에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 : 정미칠조약(丁未七條約))을 체결하였고, 이에 따라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되어 내정감독권마저 일본으로 넘어갑니다. 그해 8월에는 한국군을 해산하였으며, 12월에는 순종의 동생이었던 황태자 영친왕(英親王)이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볼모로 잡혀갔고, 1908년에는 동양척식회사(東洋拓殖會社)의 설립을 허가하여 경제침탈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 후 일본의 노골적인 야욕은 더욱 심해져 1909년에 군부(軍部)와 법부(法部)를 각각 폐지하여 정치조직을 통감부 기능 속에 흡수시키고, 통감(統監)으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서 소네 아라스케[曾荒助]를 거쳐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후임으로 오게 되는데,  이에 대한 우리 민족의 저항은 통탄과 비난을 넘어 암살을 기도하기까지 합니다. 동년 10월 안중근(安重根)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고 12월에는 이완용(李完用)을 습격하기 했지만 일제의 야욕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1910년 8월 29일에 합방의 조인서에 옥새가 찍혀 국권을 강제로 빼앗기는 경술국치를 당해 조선왕조는 27대 519년만에 망하고 일본의 식민지 지배하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후 일본은 순종을 창덕궁(昌德宮)에 있게 하고, 이왕(李王)이라 불렀는데, 순종은 망국의 한을 삼키고 1926년 4월 25일 창덕궁에서 53세로 승하합니다.

純明孝皇后 민씨 약사
  순명효황후는 여흥(驪興) 민씨(閔氏) 여은부원군(驪恩府院君) 민태호(閔台鎬)의 딸로 1872년[고종 9년]에 태어나 11세 때에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나 안타깝게도 순종(純宗)이 즉위하기 전인 1904년[광무 8년]에 33세로 승하해 지금의 뚝섬 앞 용마산 기슭에 유릉(裕陵)으로 조성했다가 순종 승하 후에 지금의 위치로 천장(遷葬)해 합장(合葬)합니다.

純貞孝皇后 윤씨 약사
조선의 마지막 황후 순정효황후  1894년[고종 31년]에 해평 윤씨(海平尹氏) 해풍부원군(海豊府院君) 윤택영(尹澤榮)의 딸로 태어난 순정효황후는 13세 때인 1906년에 황태자의 계비(繼妃)로 책봉되어 다음해 순종이 즉위하자 황후(皇后)가 됩니다. 일설에 순정효황후는 이완용이 한일합방(韓日合邦)의 조인서에 옥새(玉璽)의 날인을 시도하자 옥새를 치마 속에 감추고 버티다가 숙부이기도 했던 윤덕영에게 강제로 빼앗겼다고 일화가 전합니다. 슬하에 후사 없이 창덕궁내 낙선재(樂善齋)에서 말년을 보내면서 불교(佛敎)에 귀의하기도 했는데, 1966년에 72세로 승하해 조선의 마지막 황후로 운명을 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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