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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철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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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왕릉 소개

1대 태조: 건원릉,제릉 외

2대 정종: 후릉

3대 태종: 헌릉

4대 세종: 영릉

5대 문종: 현릉

6대 단종: 장릉, 사릉

7대 세조: 광릉

추존 덕종: 경릉

8대 예종: 창릉, 공릉

9대 성종: 선릉, 순릉

10대 연산군: 연산군묘

11대 중종: 정릉,온릉 외

12대 인종: 효릉

13대 명종: 강릉

14대 선조: 목릉

15대 광해군: 광해군묘

추존 원종: 장릉

16대 인조: 장릉, 휘릉

17대 효종: 영릉

18대 현종: 숭릉

19대 숙종: 명릉, 익릉

20대 경종: 의릉, 혜릉

21대 영조: 원릉, 홍릉

추존 진종: 영릉

추존 장조: 융릉

22대 정조: 건릉

23대 순조: 인릉

추존 익종(문조): 수릉

24대 헌종: 경릉

25대 철종: 예릉

26대 고종: 홍릉

27대 순종: 유릉


 조선 왕실세계표

 

 

 

  제15대 광해군(光海君)과 부인 유씨(柳氏) - 광해군묘(光海君墓)

 

 

광해군묘

소재지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송승리 산59
사   적 : 제 363 호

光海君墓의 특징
: 조선조의 두 번째 폐위(廢位) 임금 광해군(이혼 ; 1575-1641, 재위14년)과 문성군부인 유씨(文城郡夫人 柳氏 ; ?-1623)의 광해군묘는 연산군묘(燕山君墓)와 동일하게 군묘(君墓)의 형식으로 간촐하게 조성되어 있는데, 근방에 단종(端宗)의 비(妃) 정순왕후(定順王后)의 사릉(思陵)이 있고 일반인은 찾아보기도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두 봉분(封墳)에 각각 비석(碑石)이 있고 망주석(望柱石)과 장명등(長明燈), 그리고 문인석(文人石)만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光海君代의 사료

연도

재위

사  료(史料)

 

연도

재위

사  료(史料)

1609

1년

4월, 임해군(臨海君) 살해됨

1617

9년

8월, {선조실록(宣祖實錄)} 간행

8월, 창덕궁(昌德宮) 중수(重修)

1618

10년

1월, 대비 호 깍아 서궁(西宮)이라 칭함

1610

2년

4월, 중궁 유씨(中宮柳氏) 왕비로 책봉

8월, 허균 등을 참형(斬刑)

8월, 허준 <동의보감(東醫寶鑑)> 찬진

1619

11년

3월, 도원수 강홍립 금나라 군대에 항복

1614

6년

2월, 강화부사 영창대군(永昌大君) 죽임

1620

12년

7월, 금나라 10여명을 제외한 포로 석방

1615

7년

11월, 능창군 교동 안치(安置)후 죽임

1622

14년

1월, 승군(僧軍)을 모집케 함

1616

8년

12월, 일본에서 담배{南靈草) 들여옴 

1623

인조

3월, 인조반정(仁祖反正) 일어남 

뒷 이야기
: 선조(宣祖)는 왕비 의인왕후(懿仁王后)에게 후사(後嗣)가 없어 후궁이었던 공빈김씨(恭嬪金氏)의 소생인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했습니다. 그러나 말년에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仁穆王后)가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생산해 권력의 암투가 벌어지는 단초(端初)가 되었습니다. 결국 선조는 승하 직전 당시 적자(嫡子) 영창대군이 2살밖에 안되어 왕위를 광해군에게 물려주게 됩니다. 이것이 뒤에 인조반정(仁祖反正)의 싹이 되었던 것입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 전후 복구 사업에 전념했던 광해군은 창덕궁(昌德宮) 등 궁궐을 중수(重修)하고 대동법(大同法)도 실시했으며, 특히 그의 북방외교 정책은 당시의 국제정세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안으로는 형이었던 임해군(臨海君)과 이복(異腹) 영창대군을 유배후 살해하고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서궁(西宮)에 유폐시키는 등의 실정으로 반정(反正)의 싹을 키우고 말았습니다. 특히 영창대군을 교동에서 살해할 때, 방안에 가두고 불을 때어 질식해 죽게 함에 이르러서는 실정이 이미 정도를 넘어선 뒤라고 할 수 있습니다.
 1623년 광해군의 폐위를 논의하고 칼을 씻었다는 세검(洗劍)의 유래를 낳기도 했던 능양군(綾陽君 ; 仁祖)을 포함한 반정군(反正軍)은 광해군을 강화로 유배시키고 인목대비로부터 능양군을 왕위에 오르게 함으로써 반정을 성공하게 됩니다.

 하지만 광해군은 제주까지 유배지가 옮겨졌지만 그곳에서 67세의 천수(天壽)를 다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반정세력이 광해군을 살해할 명분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부인 유씨(柳氏)도 역시 강화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목숨을 다하고 현재의 위치에 안장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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