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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철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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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왕릉 소개

1대 태조: 건원릉,제릉 외

2대 정종: 후릉

3대 태종: 헌릉

4대 세종: 영릉

5대 문종: 현릉

6대 단종: 장릉, 사릉

7대 세조: 광릉

추존 덕종: 경릉

8대 예종: 창릉, 공릉

9대 성종: 선릉, 순릉

10대 연산군: 연산군묘

11대 중종: 정릉,온릉 외

12대 인종: 효릉

13대 명종: 강릉

14대 선조: 목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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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존 원종: 장릉

16대 인조: 장릉, 휘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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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현종: 숭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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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경종: 의릉, 혜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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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정조: 건릉

23대 순조: 인릉

추존 익종(문조): 수릉

24대 헌종: 경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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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대 고종: 홍릉

27대 순종: 유릉


 조선 왕실세계표

 

 

 

 

  제10대 연산군(燕山君)과 부인신씨(夫人愼氏)- 연산군묘(燕山君墓)

 

 

10.연산군 - 연산군 및 거창신씨묘

소재지 :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 산77
사   적 : 제 362 호

燕山君墓의 특징
: 조선조(朝鮮朝) 최초의 폐왕(廢王)인 연산군(이융; 1476-1506, 재위12년)과 폐비(廢妃) 부인 거창군 신씨(愼氏; 1472-1537)의 연산군묘는 유배지 강화도 교동(喬桐)에서 31세의 나이로 사망한 연산군을 그곳에 매장했다가, 1512년(중종 7년)에 폐비 부인 신씨의 상언(上言)으로 양주군(楊州郡) 해촌(海村)-{현재의 위치}에 이장(移葬)하여 왕자군(王子君)의 예우로 개장(改葬)했습니다. 그 후 1537년(중종 32년)에 부인 신씨가 사망하자 쌍분(雙墳)의 형태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10.연산군 - 연산군 묘역의 문인석 왕자군의 예우로 조성되었기에 곡장(曲墻)과 상석(上石), 장명등(長明燈), 망주석(望柱石), 문인석(文人石) 만으로 조촐하게 설치했지만, 그 보다는 폐위된 왕이었기에 봉분 앞의 비석 전면의 "연산군지묘(燕山君之墓)"라는 비명과 봉분을 호위하고 있는 문인석의 얼굴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애처로움이 느껴집니다. 더욱이 길 건너편에 조성된 세종의 셋째 딸 정의공주묘역보다 더 협소한 크기를 보면 그 안타까움은 더 커집니다.

  묘역의 아래에는 궁인인 의정궁주조씨(義貞宮主趙氏)의 묘와 연산군의 딸, 사위 구문경(具文景)의 묘가 함께 조성되어 있습니다.

10.연산군 - 궁인 및 연산군의 딸과 사위 묘

燕山君代의 사료

연도

재위

사  료(史料)

 

연도

재위

사  료(史料)

1495

1년

4월, {성종실록(成宗實錄)} 수찬을 명함

1502

8년

9월, 원자(元子) '노'를 세자로 봉함

1496

2년

6월, 폐비 윤씨(尹氏) 추숭(追崇)함

1504

10년

윤4월, 경연(經筵)을 폐함

1498

4년

7월, 무오사화(戊午士禍) - 김종직(金宗直) 부관참시함

7월, 언문(彦文)의 교수.학습 금함
10월,  갑자사화(甲子士禍)-김굉필 효수

1499

5년

2월, 춘추관 {성종실록}을 찬진함

1506

12년

4월, 사간원(司諫院)을 폐함

1500

6년

6월, 음난남녀처사(淫亂男女處死)의 법을 제정함

9월, 박원종(朴元宗) 등이 왕을 폐하고 진성대군(晉城大君)을 옹립함{중종반정}

11월, 과부(寡婦) 재가(再嫁) 금함

 

 

 

뒷 이야기
 : 성종(成宗)의 장남으로 태어나 1483[성종 14년]에 세자에 책봉되고 왕위까지 오르지만 재위 12년만에 성희안, 박원종 등에 의해 성종의 둘째 아들인 진성대군(晉城大君)을 추대하고 연산군을 쫓아내는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폐위되고 맙니다.  이러한 연산군에 대한 평가는 실록<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등에서 자세하게 서술되어 포악한 성격에 거듭된 실정(失政)과 폭정 등이 나열되지만 당대의 무오사화(戊午士禍)나 갑자사화(甲子士禍) 등에서 보이듯이 권력의 암투 속에서 괴로워했던 한 인간으로 본다면, 더욱이 자신의 어머니{성종비에서 폐위된 윤씨(尹氏}의 처참한 죽음을 목격한 당사자라면 어떻겠습니까? 물론 연산군에 대한 평가가 객관적으로 이루어져야 함은 당연합니다.

 부인 신씨는 1506년 중종반정(中宗反正)에 의해 연산군과 함께 폐위되었고 자신의 두 아들 또한 유배지에서 사사(賜死)되는 불우한 일생을 마감한 비운의 여인이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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