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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철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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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릉 이야기 - 대문

  왕릉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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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왕릉 소개

1대 태조: 건원릉,제릉 외

2대 정종: 후릉

3대 태종: 헌릉

4대 세종: 영릉

5대 문종: 현릉

6대 단종: 장릉, 사릉

7대 세조: 광릉

추존 덕종: 경릉

8대 예종: 창릉, 공릉

9대 성종: 선릉, 순릉

10대 연산군: 연산군묘

11대 중종: 정릉,온릉 외

12대 인종: 효릉

13대 명종: 강릉

14대 선조: 목릉

15대 광해군: 광해군묘

추존 원종: 장릉

16대 인조: 장릉, 휘릉

17대 효종: 영릉

18대 현종: 숭릉

19대 숙종: 명릉, 익릉

20대 경종: 의릉, 혜릉

21대 영조: 원릉, 홍릉

추존 진종: 영릉

추존 장조: 융릉

22대 정조: 건릉

23대 순조: 인릉

추존 익종(문조): 수릉

24대 헌종: 경릉

25대 철종: 예릉

26대 고종: 홍릉

27대 순종: 유릉


 조선 왕실세계표

 

 

 

 

   제3대 태종(太宗)과 원경왕후(元敬王后) - 헌릉(獻陵)

 

 

헌릉 - 태종과 원경왕후 

소재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내곡동 산13 <獻仁陵 소재>
사 적 : 제 194 호

獻陵의 특징
: 태종(이방원 :1367-1422 : 재위 18년, 상왕 4년)과 원경왕후 민씨(元敬王后 閔氏:1365-1420)의 쌍릉(雙陵) 형태의 헌릉(獻陵)은 창업수성(創業守成)의 업적인 조선 개국(開國)과 왕실의 기반을 공고하게 만든 태종의 치적답게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태조의
건원릉(健元陵) 형식을 따른 헌릉은 원경왕후 승하 후 태종의 명으로 조성되었으며, 건원릉과 같이 신도비(神道碑)를 세워놓고 있습니다. 같은 경내(境內)에 23대 순조(純祖)의 인릉(仁陵)이 함께 모셔져 '헌인릉(獻仁陵)'의 명칭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태종대의 사료(史料)

연도

재위

사  료(史料)

 

연도

재위

사  료(史料)

1401

1년

7월, 신문고(申聞鼓) 설치

1410

10년

2월, 주자소에서 서적을 인쇄 판매함

1402

2년

1월, 과거에 무과(武科) 설치

1411

11년

11월, 한성에 오부학당(五部學堂) 설치

8월, 호패법(號牌法) 실시

1412

12년

2월, 한성 개천(開川) 공사 끝남

1403

3년

2월, 주자소(鑄字所) 설치{계미자}

1413

13년

3월, 태조실록(太祖實錄) 15권 완성

1405

5년

1월, 최초 여관(女官) 임명{3월 폐지}

12월, 백성들에게 호패 패용토록 하명

10월, 창덕궁(昌德宮) 완성

1417

17년

5월, 명(明)에 바칠 처녀 선발

1408

8년

5월, 태조 이성계 승하{1335- }

1418

18년

6월, 세자 폐하고 충녕대군을 세자 책봉

1409

9년

8월, 태조실록 편수 하륜에게 하명

8월, 세자{忠寧大君}에게 선위(禪位)

뒷 이야기
: 태종 이방원은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나 조선의 개국(開國)에 1등 공신(功臣) 역할을 했습니다. 정몽주를 비롯한 고려(高麗)의 충신들을 제거하고 개국한 새왕조 조선이었기에 이방원의 야심은 당연히 왕권(王權)에 있었습니다. 세자(世子)였던 태조의 계비(繼妃) 신덕왕후(神德王后)의 소생 방석(芳碩)을 제거한 제1차 왕자의 난과 형 방간(芳幹)을 제거한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이방원은 즉위 후 중앙집권제(中央集權制)를 확립하고 세종대(世宗代)의 성대(盛代)에 기반을 세웠습니다.
 태종은 18년간의 왕위(王位) 동안 국가의 모든 문물과 제도를 정비하고 명(明), 일본(日本), 여진(女眞) 등 주변국과의 관계 정상화로 국가의 기초를 확립했습니다. 특히 세종(世宗)에게 선위한 후에도 병권(兵權)은 장악하고 세종 원년의 대마도(對馬島) 정벌(征伐)을 주도했으며, 그 후 별궁(別宮)에서 여생(餘生)을 즐기다가 56세의 나이로 승하합니다.

 원경왕후는 고려말기의 신하였던 여흥부원군(驪興府院君) 민제(閔霽)의 딸로 태어나 슬하에 세종(世宗)과 양녕, 효령, 성녕의 3대군(大君)과 정순, 경정, 경안, 정선의 4공주(公主)를 두었습니다. 말년에 태종과의 불화(不和)로 처남 민무구(閔無咎), 민무질(閔無疾) 형제의 처형 등 정치적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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