家를 형성자로 설명하면서 豕를 성부로 보고 계시는데요.
豕음이 여러단계를 거쳐 현대한국음인 [가]가 되었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豕음은 현재 [시]인데, 어찌 [가]라고 하신것인지 잘 이해가 안되오니, 추가 설명부탁드립니다. [이 게시물은 운영자님에 의해 2020-12-20 19:22:44 질문/답변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운영자님에 의해 2022-11-07 15:09:14 QNA 관리에서 이동 됨]
나그네16-10-28 08:37
豕의 현대 음은 [시] 이지만, 수많은 파생자에서 ㄴ 받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豩(빈), 豚(돈), 彖(단), 圂(혼)
일부 글자에서는 ㄱ 받침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이는 '돌'의 방언 '독'의 사례에서 보듯이 ㄷ/ㄹ 받침은 ㄱ 받침으로 상호 변화가 가능합니다. 드물기는 하지만요.
豖(축)
그럼 원래 발음이 [선] 정도가 아니겠느냐 하실 수 있는데, 위에서 제가 예시를 든 파생자들은 초성이 모두 ㅅ과 다릅니다. [혼]의 음은 ㅎ구개음화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고, [돈], [단]의 음은 우리말 고어에서 돼지를 [돝]이라고 했듯이 [돝]과 유사한 음가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으며, [빈]의 음 또한 ㅎ 자음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ㅎ → hm → ㅁ(예: 黑 → 默, 墨) → (동계자음) → ㅂ)
그러므로 豕의 자음은 [훧] 정도로 추정될 수 있는데, 돼지의 울음소리가 꿀꿀인 것을 감안하면 [퀃]으로 추정됩니다. 갑골문에서 犬(개 견)과 豕(돼지 시)는 거의 똑같고 꼬리의 방향으로 구분해서 쓰고 있습니다. 犬에서 추정되는 개의 울음소리 또한 [퀃]이니, 고대 중국인들이 울음소리 의성어가 유사한 두 동물을 거의 같은 자형으로 꼬리만 달리 해서 썼다는 것이 이해되는 부분입니다.
나그네16-10-28 08:46
한 가지를 뺴 먹었네요. 豚(돈), 彖(단)의 음가에서 豕 자의 자음에 [퀃]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ㅋ 음 없이 ㄴ/ㄷ/ㄹ 의 음가를 나타낼 수 없습니다. ㅎ 음 만으로는 ㅁ 계 자음, ㅅ 계 자음 정도로만 변화 가능할 뿐이죠.
ㅋ 음이 있었으니까 매개자음 l의 첨가로 kl 음을 거쳐서 ㄹ 음에 도달한 뒤, 동계 음인 ㄴ, ㄷ 로 변화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근거를 조합해 보면 豕의 태초 음가는 돼지의 울음소리 [꿀꿀]을 모방한 [퀃] 음이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나그네16-10-28 10:04
음운학 연구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음운학적인 지식이 있으셔야 합니다.
연구에 필요한 지식을 개략 요약해 드릴테니 참고하세요.
1. 동계 자음
훈민정음의 아설순치후(牙舌脣齒喉)에 대해 공부하시면 됩니다.
어금니에서 나는 아음(牙音): ㄱ, ㄲ, ㅋ, ㆁ[ng]
혀에서 나는 설음(舌音): ㄴ, ㄷ, ㄸ, ㅌ, ㄹ(ㄹ은 반설음)
입술에서 나는 순음(脣音): ㅁ, ㅂ, ㅃ, ㅍ
이에서 나는 치음(齒音): ㅅ, ㅆ, ㅈ, ㅉ, ㅊ, ㅿ[z](ㅿ은 반치음)
목구멍에서 나는 후음(喉音): ㅇ, ㆆ, ㅎ
가장 왼쪽의 자음이 대표 자음으로 각 부위의 상형문자입니다. 이후의 글자들은 가획과 중첩의 원리로 파생시켜서 만든 글자들입니다.
이 자음들을 익히는 게 중요한 이유는 언어의 변음에 있어서 초성은 동계 자음 내에서만 변화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자음은 조음 기관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조음 기관이 같은 자음 내에서만 변화되는 것이고, 모음의 경우는 혀의 위치에 따라 영향을 받기 때문에 비교적 변화가 자유롭습니다.
그런데 이 범주 밖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는 하는데, 그것이 바로 몇 가지의 음운 현상들입니다.
나그네16-10-28 10:09
2. 탈락 현상
음운 현상에서 가장 쉬운 현상 중 하나가 탈락 현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있던 받침이 떨어져 나가 없어지는 현상입니다.
이런 변화는 한자 음의 변화에 있어서는 흔하지는 않지만, 종종 일어나곤 합니다.
3. 구개음화
국어 시간에 배운 그 구개음화 맞습니다. 그런데 국어 시간에 배운 구개음화는 [디], [티]가 [지], [치]로 변하는 현상만 배웠는데, ㅎ구개음화 라는 것도 있습니다. [히]가 [시]로 변하는 현상입니다. [형님]이 구개음화되어 [셩님]을 거쳐 단모음화되어 방언에서 [성님]이라고 하듯이, [히] 음이 [시] 음으로 될 수 있습니다.
한자 음에 있어서는 둘 다 자주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특히 [디], [티]가 [지], [치]로 변하는 현상은 중세 한국음에서 현대 한국음의 변화에 자주 보입니다. [듕귁] → [즁귁] → [중국].
나그네16-10-28 10:19
4. 매개자음
영어를 포함한 서양 언어들처럼 고대 중국음에는 매개자음이라고 하는 게 있었습니다. 바로 r, l의 존재인데요. 자음 뒤에 붙어서 발음을 부드럽게 해주는 역할입니다. 各(각각 각)이 洛(물이름 락)에서는 [락] 음이 되었는데, 이것은 kl 이라고 부르는 이중자음을 거쳤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k, p 뒤에 매개자음 r/l이 끼어들어 kl, pl이라고 하는 이중자음이 고대 중국음에 존재했었습니다. 상고음을 재구하는 학자들은 아예 이중자음을 태초 음가(상고음)로 제시하고는 하는데, 저는 이중자음은 음운 변화 현상 속에서 임시적으로 존재했던 것이지 태초 음가에서부터 이중자음이 존재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이 존재를 알아야 婁(루) 계열의 형성자를 포함한 많은 형성자의 자음이 풀립니다.
屨(신 구) 자에서 보듯이 婁(루)는 원래 [구] 음이었는데, 婁가 [루] 음이 된 것은 매개자음 때문인 것이고(k → kl → l (k음 탈락)), 數(수)에서는 ㅎ 음을 거쳤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엄밀한 재구는 아니고, 쉬운 예를 들어드리기 위한 간략한 추론입니다. 실제로는 數에 [삭], [촉] 음도 있으니 이를 고려해 받침까지 함께 재구해야 할 것입니다.
나그네16-10-28 10:30
5. 특수 자음의 존재
고대 중국음에는 또 hm 이라고 부르는 자음도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黑(검을 흑) 자가 hm 음을 거쳐서 默(묵), 墨(묵), 嘿(묵) 처럼 [묵] 음이 될 수 있었던 것이고, 원래 [해] 음이었던 每(매) 자가(예: 海(바다 해)) hm 음을 거쳐서 [해] → hmㅐ → [매] 음이 된 것입니다( 역시 每의 엄밀한 재구는 아닙니다. 每의 실제 태초 음가는 받침도 존재해서 조금 더 복잡합니다. 每의 받침은 毓(육) 자로부터 재구됩니다. )
그리고 상고 한어음에는 coda라고 부르는 음운 요소가 존재합니다. 일종의 접미사처럼 한자 음의 맨 끝에 붙은 자음인데 이것이 나중에 중고 한어음에서 성조로 발전한 것입니다. 성조와 장단음을 연구하려면 이 coda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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